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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교회

개독들은 그 입 다물라

Reg Teddy 2009. 2. 23. 11:22
   한국 기독교는 유례없는 위기를 맞고 있다. 그것은 단순히 성도수가 꾸준히 감소세에 있다거나, 개척교회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그런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다. 불과 15년전만 해도, 교회를 다니면 '착한사람' 혹은 '순진한 사람' 이라는 소리를 들었던 기독교인들은 지금에 와서는 '답이 없는 사람' '꼴통' 심지어는 '개독' 이라는 말을 듣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일반적인 여론이 교회를 바라보는 눈이 완전하게 바뀌었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 시선의 변화에 따른 위기는 그간 교회를 덮었던 어떤 위기보다도(신사참배로 인한 순교자의 속출보다) 더 크고 강렬한 위기라고 할 수 있다.

불신자의 눈을 오히려 감기는 노방전도


   기독교의 기본 가치는 선교이다. "땅끝 까지 이르러 증인이 되는 것" 이라는 지상명령이 기독교의 기본 이념 중에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의 한국에서 과연 이런 선교를 이룰 수가 있는가? 증인이 되기전에 피고가 되어, 자신의 무죄를 입증해야하는 입장에 서 있는 개독의 입장에서는 도무지 불가능하다고 할 수 밖에 없다. 기본가치를 구현 할 수 없는 종교가 본질을 잃어버린 끝은 결국 추락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이런 추락을 막기 위한 무분별한 대형화와 진리의 희석은 일시적인 감소의 완화를 가져올 수 는 있으나 결국은 기본가치를 잃게하여 그 특별함이 없어지게 하는 주요한 원인이 된다.

   사실 기독교가 정말 이 사회에, 혹은 개독의 이름을 단 사람이 한 개인에게 죄를 지었는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기독교가 개독이란 이름의 피고로 이 사회에 서 있지만, 그들의 위법성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많은 것이다. 이것은 단지 그 이름이 가장 앞 줄에 있었기에 처음으로 의심을 받는 것이며, 사실은 그 모든 악의 근원이 아닌 사회의 전반적인 병폐일 확률이 높음에도 불구하고 기독교가 그 사회의 가장 앞 줄에 있기에 폭탄을 맞는 것이다라는 해석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런 해석이 사실일 수는 있다. 그러나 이런 해석을 개독 자신들이 주장하는 것은 사실을 사실로 만들지 못하게 되는 행위가 될 가능성이 크다.  게시판에, 덧글에 안티 크리스쳔들의 과격한 댓글에 많은 기독교인들은 조목조목 반박하며 기독교가 사회에 얼마나 큰 공헌을 하고 있는 지를 설명하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행위들이 일정부분 사실일지라도 곱게 비추어 지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다.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라는 말씀은 다름 아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이는 황금율이라 일컫는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라는 말씀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자신의 공적을 치하하고 싶어하고, 인정받고 싶어하면 할 수록 그것이 인정을 위해서 하는 일이 되어버리고, 그 사람을 높여주기보다는 그 사람의 격을 떨어뜨리는데 일조하게 되는 것이다. 기독교라는 종교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얼마전 서울 성락교회가 신도림 동에 주민센터를 기부하며 그 표지석에 "주님의 은혜" 라는 말을 넣어 논란이 되고 있다는 불교신문의 기사가 이슈가 된 적이 있다. 성락교회가 이단의혹을 받는 교회인 것을 떠나서, 해당 기사가 게재된 매체도 불교신문이라, 다분히 종교적인 지적임에도 불구하고 앞뒤를 가리지 않는 네티즌들은 블로그로 일파만파 퍼지며 기독교에 대한 비난을 앞세우기 일 수 였다. 분명 교회가 사회에 공헌 할 수 있는 부분을 했고, 합당하게 나타내야할 기부의 댓가(?)인 종교적인 축사를 보낸 것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의 시선은 곱지 않은 것이다. 

신도림동 주민센터에 세워진 성락교회의 표지


   결과적으로 이런 상황을 극복하는 것은 자신의 일을 드러내는 것이 아닌 숨어버리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수도사는 세상과 단절함으로 자신의 가치를 알리고 드러낸다. 불교의 고승은 10년동안 벽을 바라보며 아무 이야기를 하지 않는 침묵 면벽 수행으로 자신의 가치를 입증한다. 물론 세상과 가장 가까운 곳에 존재하는 기독교가 그들처럼 속세를 끊고 자신의 가치를 드러낼 수는 없겠지만, 그 세상속에 자기를 드러내지 않을 때 비로소 사랑이 전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현실의 세상은 홍보의 시대다. 자기가 하는 일을 적극적으로 알리지 않으면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것 처럼 여겨지는 시대인 것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런 홍보가 넘치기에 사람은 진실을 느낄 수 없는 진리 무감각의 시대가 되고 말았고, 진리가 없기에 그 진리를 찾아 나서는 구도자의 삶을 갈망하는 시대가 되기에 이르렀다. 가치는 숨어있는 것을 찾는 것으로 전하는 시대가 이르른 것이다. 숨는다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 이상의 일을 하면서도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겨 묵묵함에 이르는 것. 숨어버리는 생명의 수태자가 되는 것이다.

   지금이라도 논쟁의 탈을 벗고, 그 입을 다물어 주변을 둘러보라, 도움의 손길에 응하고 그들의 자리에 함께 서라. 말보다 앞서는 행동으로 세상에 나아가고, 세상을 바꾸는 것이 흠 없는 경건인 것이다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더웁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약 2:14~17)"

   말로 자신의 가치를 드러내는 것은 쉽다. 그러나 가치있게 행동하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것이다. 지금 자신의 귀에 들리는 개독이라는 말이 거슬린다면, 옷을 찢고 참람하다 할 것이 아니라, 회개의 무릎을 꿇고 그 말을 듣게한 자신의 죄를 회개하며, 그 무릎을 일으켜 경건한 삶 속으로 들어가자. 그 경건은 자신의 최선을 넘어선 헌신으로 이 사회를 섬기고, 어려운 자를 도우며 그 모든 영광을 입으로 드러내기 보다 가슴 깊이 하나님 앞에 돌리는 것이다.  "도를 도라 말하는 순간 그것은 이미 도가 아니다" 라는 노자의 말은 많은 시사점을 준다. 우리의 선행과 하나님 앞에 당연히 해야할 일들의 노고를 우리의 입에 담는 순간 그것은 우리의 공이 되지만, 영광이 되지는 않는다. 입을열어 교회의 덕을 선전하는 개독들은 그 입을 다물고 기독되신 예수의 이름앞에 부끄러움이 없는지를 묵상하며 더 돌아보아 살피자. 아직 할일은 많고 멈추기는 이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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