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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실 기독교 신앙의 근본적인 가르침에 비추어 본다면 인터콥과 장목사의 발언과 행동에서는 문제를 찾을 수가 없다. 믿지 않는 지역에 선교하는 것이 기독교라는 종교의 중요한 가치 중의 하나이고, 예수 그리스도 이외에 다른 방법으로는 구원에 이를 수 없다는 것은 가장 기본이 되는 가르침이기 때문이다. 이 주장 자체가 기독교 신앙안에서 문제가 없는 주장이기 때문에 수 많은 안티 크리스쳔들은 이 사실을 근거로 기독교를 공격하며, 상종도 못할 종교로 몰아세우는 한편, 월드비전처럼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구호 단체 조차 '구제를 빌미로 선교하는 더러운 단체' 로 격하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 글 을 통해 인터콥을 비하하거나 장목사를 폄하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들의 입장과 의견을 두둔할 생각 역시 없다. 핵심이 되는 근본 가르침에 대해서는 분명하지만, 그것을 이루어내는 방법론에 있어서는 과연 예수 그리스도가 제시하고 직접보인 방법과 다르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가장 감동적인 방법론은 자기를 낮추어 죽기까지 복종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발을 씻는 스승의 모습이다. 그것은 구원의 핵심임과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가 제시한 믿음을 이끌어내는 가장 큰 방법이었던 것이다. 신이 인간을 위해 자세를 낮추었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고결함이 미천해 진다는 것이다. 이것은 굉장한 특권을 가지고 있음에도 그 특권을 인정하는 모든 것을 포기한다는 것과 진배없다. 1
이는 상대방인 인간의 입장에서 생각한 행동이다. 인간수준에서 인간의 모습으로 상대방의 진정한 필요를 생각하고 움직인 하나님의 특별함이다. 그러나 현재 한국 교회의 방법에서는 상대방을 배려한다는 마음보다는 우리 기독교라는 틀 이외의 다른 모든 대상은 싸워야할 적이며 그들과 논리적, 감정적, 종교적으로 싸워 우위를 얻는 것이 바로 승리하는 것이라는 호전적인 자세를 가지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상대방의 입장에 서서 그가 느낄 수 있는 최대한의 것을 동원해 자신을 나타내고, 부족한 부분은 자신(성령)이 직접 임해서 가르쳤는데, 그의 제자를 자처하는 한국교회는 상대방의 입장에 서기보다는 자신의 입장을 지키고 고수하는데에만 온 힘을 다하고 있다.
상대방의 입장에 서서 생각한다고, 믿음이 흐려지거나 달아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상대방이 믿도록 하게 하기 위해서는 그 상대방의 생각을 좀 더 깊이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언더우드 선교사는 '조선인의 마음'을 보려고 노력하였다. 원하지 않는 땅에 전투적으로 뚫고 들어가기 보다 그 곳의 사람들을 어떻게 더 효율적으로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잘 들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우선 아닐까? 2000년 실크로드 예수행진 시절 인터콥이 지나간 자리에 오히려 선교의 역풍이 불었다던 어느 선교사님의 말씀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이제 막 귀를 열려던 사람의 귀를 다시 막게 하는 것이 규모는 크고, 눈에는 띄지만 작은 구멍을 모두 막아버린 그 사역이 정말 선교였을까? 2
순교와 박해가 없는 곳으로만 골라 가자는 주장을 하는 것이 아니란 것을 이야기 하고 싶다. 오히려 순교나 박해는 좋은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순교와 박해를 받는 이유는 그들에게 저항을 하지 않음의 상징이지, 그들과 전쟁을 해서 나오는 전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순교자의 피로 문이 열린다는 것은 죽음으로 그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귀를 열었던 것, 결국 나의 가장 좋은 것을 포기해서 그들이 듣게 하는 행동이라는 것이다.
크리스쳔이 아닌 사람에게 이런 말을 하면 기분나쁠 수도 있고, 낯 간지러울 수도 있겠지만, 나나 장목사나 인터콥의 최바울 목사나 모두 믿지 않는 사람들과는 다른 특권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그것은 내가 잘나서 얻은 특권도 아니고 공짜로 누구한테 받은 권한인 것이다. 근데 그것을 공짜로 준 대상은 그것을 가지고 자랑하지 말라고 했다.. 다만 그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라고 했다. 많은 한국의 선교 단체와 목사들은 그 '빛' 이 되기위해 노력을 한다. 그러나 소금의 의미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고, 그저 빛을 들고있다는 환상에 취해 과시 하고 있지는 않은가 생각해 본다. 3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아무 쓸 데가 없어 밖에 버리워 진다고 하였다. 그럼 맛이 있는 소금의 역할은 무엇인가? 그것은 음식을 만드는 일인 것이고, 음식을 만들 때의 소금의 모습은 자신의 모습은 지워 완전히 녹아드는 모습인 것이다. 소금을 넣어도 맛을 낼 수 없는 소금은 녹지 않은 소금이다. 세상이라는 요리에 복음이라는 소금이 녹지 않는다면, 그 것은 세상에 맛을 낼 수도 없고, 짜게 할 수도 없으며, 결국은 버림받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녹아져 형체를 없애는 것이다. 이는 세상에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복음의 형체가 없는 것이 세상과 타협한 것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그 속에 복음의 맛이 있어 세상에 오히려 새로운 맛을 준다면 그것은 복음으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감당하고 있는 것이다. 보이지 않지만, 이미 세상은 변해있는 것이 세상의 소금이 지향해야할 궁극적인 방향점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소금은 철저하게 돕는 역할이다. 소금으로만 되어지는 요리는 없다. 소금이 없이는 요리를 만들 수 없지만, 소금만으로 요리를 만들 수 없기도 하다. 사회의 일원으로서의 비판을 수용하지 못하고, 그것을 오히려 공격으로 여기며 이겨내야할 싸움으로만 생각한다면 언제 녹아서 맛을 낼 수 있을까? 기독교는 대통령을 뽑고 권력을 잡으며 그것으로 인해 특수를 누리며 그 터전을 공고히 할 생각을 하기보다는 좀더 세상에 녹아들어 그 세상을 바르게 이끌어야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 대통령을 공격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공격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불교라는 종교를 공격하기 위해서 팩트마저 왜곡하고, 반대하는 의견은 묵살하며 사탄의 세력으로 생각하기보다 그들이 왜 반대하는 지, 다른 종교는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에 대해서 귀를 열어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삶에 녹아들며 복음의 진의를 전한다면 그것이 오히려 왜곡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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