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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 처럼, 기독교에서 리더쉽을 강조하던 때가 있었을까? 수 많은 청년 모임에서 리더가 되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많은 청년들이 그런 말들을 세뇌받듯이 들어 세상의 중심에 서야 할 것만 같은, 주먹을 불끈쥐고 나아가서 세상을 점령하고 복음의 기치를 높이 들어야할 것 같은 정신으로 전선에 뛰어들고는 한다. 호전적인 메세지는 각광받고, 그런 가슴을 끓어오르게 하는 이야기는 열정으로 둔갑하여 가슴이 끓지 않으면 열정없는 죽은 그리스도인이 되고, 가슴이 끓어 싸워 이기면 열정넘치는 그리스도인이 되고는 한다.


   사실 어려서부터 듣던 어머니의 기도 중 "머리가 될 지언정 꼬리가 되지 말게 하옵시고.." 라는 기도를 떠올려 보면 이런 리더쉽에 대한 열망이 비단 오늘날의 이야기만은 아닌 것 같다. 중심이 되고 싶어하는 컴플렉스는 기독교의 본질인가.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역사 속에서 기독교가 사회적 중심이 되고자 노력했던 사례는 굉장히 많고, 실제로 사회의 중심이 되었던 경우도 굉장히 많은 편이다. 그러나, 기독교가 사회의 중심이 되고 리더가 될 수록 사회는 왜곡된 방향으로 치닫고는 했으니 과연 이것이 하나님의 뜻인가? 라는 부분에는 의문이 있다.

   이명박대통령을 뽑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던 목사님들께서는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하다. 이명박 대통령의 개인적인 자질문제를 떠나서, 그가 기독교의 대표자로 인식되는 것을 우려했던 나로서는 작금의 현실이, 리더쉽의 환상이 궁극에는 어떻게 되어가는 가를 보게 되는 것 같아 씁쓸하다. 사회의 핵심에 있으면서도 그 영향력이 오히려 하나님의 이름을 가리고 하나님의 얼굴에 먹칠을 하는 이 대통령은 그렇다면 잘못된 리더인가? 그는 사울왕이라는 것인가?

   백번양보해서, 그가 사울왕이라고 한다 쳐도, 그렇다면 현대 교회의 리더쉽에 대한 담론은 과연 다윗왕을 배출 할 수 있는 담론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면 그렇게 쉽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전쟁을 좋아하고, 싸우게 만들며, 그 싸움에서 이기게 만드는 담론들. 어떻게 세상을 이길 것인가를 강하게 전하는 메세지. 세상은 악함을 이겨낼 승리의 전략만을 세우는 담론들은 우리가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준다. 그리고 그렇게 하게 만든다. 그럼 우리의 전략과 전술을 뛰어넘는 빠른 사회의 변화는? 그리고 우리와 완전히 다른 그들의 논리는? 결국 골리앗이 되어 점차 교회가 세상을 이길 수 없게 하고, 교회와 세상의 단절을 가져온다. 그런 골리앗에게 다가간 다윗의 방법은 "전쟁은 하나님께 속했다"고 인정하고 나가는 것이었다.

   그 다윗은 자신의 차례가 되기 전까지 철저하게 도망다니고 숨는 삶을 살았다. 하나님이 그를 끌어올리시기까지 비참에 처하는 그의 삶과, 모두가 리더가 되어야 한다고 가르치는 우리의 삶이 닮아있는가? 사회의 고지에 오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모습이 우리를 미래의 다윗으로 만들 것이라는 것은 큰 오산인 것 같다. 끓는 가슴을 식혀 진정하고, 예수님의 겸손하심을 닮아야 한다. 다윗의 겸손함을 닮아야한다.

   우리는 마치 더 이상 물로 심판하지 않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못들은 척 산에 방주를 짓는 어리석은 사람과 같다. 과도한 성공에 대한 욕망이 신앙으로 표출되는 것이 현대의 리더쉽 담론이다.  교회라는 방주를 산으로 들고 올라가 고고하게 아래에서 내려다 보며 기독교가 우월하다고 부르짖고 싶어하는 사람들과, 물 심판을 예상하여 이번에는 이겨내기 위해 바벨탑을 쌓는 사람들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섭리 속에 인간의 최선이 중요하다는 말의 뒤편에 숨어있는 것은 이런 바벨탑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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