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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지에 봉사하러 가는 사람은 대 부분 크리스쳔이기에... 아마도 개신교인이나 천주교인일 것이라 생각했고, 역시나였습니다. 그리고 예상대로 수 많은 비판이 쏟아져나오고 있습니다. 이런 피랍이 선교와 맞물려 비판을 받으며 봉사와 구제의 진정성 까지 의심받게 된 것은 아마 2007년 샘물교회의 아프간 피랍사건이 계기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사실 선교를 목적으로 출국한 선교사의 죽음은 샘물교회 배형규 목사님 이전의 김선일씨의 사건이 있었는데요, 그 당시의 일반적인 사람들의 태도와, 샘물교회 사건 이후의 사람들의 태도는 180도 바뀌어있습니다. 심지어는 김선일씨에 대한 평가조차 2004년과는 판이하게 다른것이 최근의 일입니다.

   샘물교회 사건이 계기가 되기는 했지만, 이런 개신교를 향한 사회의 비난은 그 동안 쌓여왔던 개신교에 대한 불만이 표출 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비난은 점점 힘을 얻어가서 비난을 위한 비판도 힘을 얻고, 사실에 근거하지 않거나 정확하지 않은 사건에 대해서도, 개신교라면 그럴 것이다라는 추측마저 깔리며 순수한 종교적신념(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조건없는 박애 정신)을 실천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닮아가고 싶어하는 선교사들의 헌신조차도 배타적이며 독선적인 모습으로 바꾸어버리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배타적이지 않고 독선적이지 않은 정말 순수한 봉사활동을 하며, 선교지의 아픔을 마음에 품고 자기 일처럼 헌신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굳이 꺼내서 옹호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어차피 지금 교회에 분노하고 있는 사회의 눈에는 그 조차도 진정성이 의심되는 죽어 마땅한 죄인의 모습이니까요. 

   이 모든 것 속에서 진정 한국교회가 회개해야할 일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눈에 보이는 증거만 찾으며, 선교지에서 자신이 한 일을 선전하기 바쁜, 전시성 선교를 진정한 선교로 생각한 한국교회의 미숙함을 회개해야 할 것입니다. 한국교회의 선교 사역 안에는 조바심이 있습니다. 당장 눈 앞에 있는 열매를 따야 할 것 같은 추수꾼의 마음만 있고, 들판을 가꾸어 열매를 맺도록 농사를 짓는 농부의 마음은 없습니다. 들판이 아직 푸르른데도 애써 흰색안경을 끼고 들판이 희어졌다고 선동하며 추수꾼으로서의 선교만이 진정한 선교라고 생각했던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예전에 만났던 한 선교사님께서 이런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선교란 언젠가 올지 모르는 10분의 전도를 위해 예수의 예자도 못 꺼내는 10년의 평범하고 지루한 선교지의 일상을 견디는 것이다." 강제로 무릎을 꿇게하는 십자군의 시도가 어떻게 실패하였는가는 역사가 말해주고 있습니다. 무릎은 스스로 꿇을 때에 의미가 있는 것이고, 선교는 무릎을 강제로 꿇게 하는 것이 절대 아니라는 것을, 선교지의 마음을 얻을 때 까지(그들이 깨달을 때 까지) 아무런 신앙적 성과가 없는 생활을 견딜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혹시 마음을 얻지 못하였더라도, "발의 먼지를 털고 다른 곳으로 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십자군의 강제적 선교는 문을 닫는 선교였습니다. 그 것은 밖으로는 중동 사람들의 마음과 문호를 닫게 만들었고, 안으로는 교회에 대해 회의를 갖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여파로 교회는 그간의 부정함을 강하게 비판받으며 프로테스탄트를 탄생시키게 되었습니다. 이와 동일한 일이 2009년 현재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혈기만 왕성한 선교들은 결국 교회의 모난 부분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마치 중세의 십자군처럼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모세는 자신의 혈기로 하나님의 일을 하려하다가 40년 동안 죽어지내야 하는 시련의 시기를 겪었습니다. 지금 한국 교회 역시 혈기로 하나님의 일을 이루려고 하는 오만함을 내려놓고, 스스로 겸비하여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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