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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주 사용하지 않는 블로그이지만, 편하게 글을 남기기 위해서 사용해 보려 한다. 살아오면서 참 힘든 일도 많았지만 그래도 기억에 남는 것은 즐거웠던 일들이다. 40년을 가까이 살아오다보니 이제는 그렇던 좋은 추억도 아련히 사라져가는 것을 느낀다. 이제 시간이 지나면 잘 기억이 나지 않을 그런 일들을 조금이나마 기억에 남기고자 이 곳에 글을 써 본다.


지금도 목욕하는 것을 참 좋아한다. 와이프와 연애할 때 처음 찜질방을 간 날도 목욕에 너무 심취하다보니, 늦게 나와서 대판 싸웠을 정도로 나는 목욕을 참 좋아한다. 목욕을 좋아하게 된 계기는 아마도 이 장소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귀빈 사우나


지금은 사라진 곳이지만, 국민학교 3학년 때 이사오고 처음 가본 귀빈사우나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지금이야 별거 아닌 시설이고, 더 좋은 시설이 있을지 모르지만, 당시에는 그렇게 시설이 좋은 목욕탕을 구경하기 힘들었었다. 붉은 벽돌에 앞 카운터 좌 우측으로 나뉘어 있고, 가운데 카운터에 늙은 아저씨가 표를 나누어 주며, 오른쪽은 남탕 왼쪽은 여탕 이런게 일반적인 목욕탕이었다면, 귀빈 사우나는 일단 이름부터가 귀빈, 그리고 사우나 라는 독특한 조합으로 뭔가 고급스러운 느낌을 가지고 있었다. 지하로 내려가는 길에 간접조명으로 으리으리 하게 비추어주는 간판. 개방감이 느껴지는 높은 천정으로 대리석 으로 된 커다란 카운터에는 추레한 할아버지 대신 비교적 젊은 아저씨가 안내를 했었다. 훅훅한 물곰팡이 냄새와 한약재 냄새가 섞여나는 다른 동네 목욕탕과는 달리 이 사우나는 뭔가 은은한 맨솔향의 향수의 향기가 나던 기억이 난다.


실내로 들어가면 더욱 놀라운 일 투성이었다. 다른 목욕탕보다 2배는 넓은 실내와, 돌사이로 폭포수가 내려오는 냉탕은 호화로운 느낌이 들었고, 지금은 어디에나 있지만, 온탕에서는 보글보글 거품이 나오고, 등 뒤로는 제트 분사가 되는 기기 까지 달린 최 첨단의 욕조와, 일반 목욕탕과는 격이 다른 커다란 사우나 실은 나무로 되어있는 것이 아닌 하얀 수건이 깔려져 있어 호화롭기 그지 없었다. 어린 마음에도 다른 목욕탕보다 귀빈사우나를 다녀오면 뭔가 더 활기차고 개운한 느낌이 들었다. 


사실 이런 화려한 사우나도 좋았지만, 더욱 좋았던 것은 목욕이 끝나면 열쇠번호만 말하면 음료수를 마시고 후에 결제를 할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이전까지 다니던 목욕탕들은 뭔가를 시키면 바로 지불해야하는 선불제였는데, 귀빈사우나는 모든 면에서 손님을 귀빈 처럼 모시고 있었다. 쉽고 편하게 퇴실 할 때 지불하는 후불제 시스템이라니!! 아무튼 이곳을 다니면서 나는 늘 아버지보다 먼저 나와서 꼭 밖에서 사먹는것 보다 비싼 음료수를 꼭꼭 사먹었었다. 많은 음료수를 먹었지만, 제일 좋아했던 음료수는 역시 포카리스웨트와 데자와 그리고 솔의 눈 이었다. 먹는 순간 청량해 지는 그 솔의 눈의 맛을 잊기는 힘들 것이라 생각한다.


시간이 지나고 그보다 훨씬 좋은 사우나 며 찜질방이 생겼고, 데자와 솔의눈보다 훨씬 맛있는 음료수도 많지만(분다버그 진저비어나, 상펠그리노 자몽소다나..) 그래도 그 시절의 추억과 기억보다 아름답고 맛있는 음료는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것은 아마도 어린시절 가장 민감하고 모든것이 새롭던 시기에 있었던 가장 강렬한 경험이기 때문이다. 이제 당산동도 많은 것이 변하여 귀빈사우나가 있던 건물은 흔적조차 없이 다른 건물로 변해버렸지만, 기억속에 남아있던 그 장소는 아직도 아름다움으로 남아있다. 오히려 이제 다시 갈 수 없기 때문에 더 아름다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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