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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묵상

올랜도의 날씨

Reg Teddy 2005. 8. 19. 02:58

올랜도의 날씨는 참 신기하다. 아침에는 그렇게도 뜨거운 햇빛으로 무덥다가, 어느덧 오후의 시간을 넘어서면, 칠흙 같이 검은 먹구름에 쏟아지는 빗줄기를 감당 하지 못할 정도로 비가 온다. 이곳에 사는 사람에게 물어보지 않아 매번 그렇게 내리는 지는 알 수 없지만, 3일 동안 이곳에서의 생활을 돌아보면, 항상 그렇게 지내왔던 것 같다. 정말 큰 소리를 내는 천둥과, 지붕을 부숴버릴 듯 내리는 비의 조화는 아침의 밝음이 언제 그랬냐는 듯 큰 어두움으로 대답한다.  비가 내리면 좀 더 시원해 져도 좋으련만, 시원해 지기보다는 내일의 태양을 더 뜨겁게 하는 것은 빗방울에 반사되어 나타나는 햇빛의 찬란함 때문일까?

 

문득 떠오르는 의문이 있다. 올랜도의 초등학생이 그림일기를 그린다면, 과연 오늘의 날씨는 맑음일까? 흐림일까? 비옴일까? 비온 후 갬 일까? 정답은 일기 쓰는 사람 마음 속에 있다라는 생각이 든다. 만약 그 초등학생의 아침 일과가 체육시간이었고, 종목이 달리기였다면, 그 초등학생의 일기장엔 오늘 날씨는 더움일 것이다. 달리다 힘들어서 쓰러질 때, 짝궁이 전해준 시원한 물이 고마웠다면, 더운 날씨에도 관심을 가져준 그 손길에 더욱 기뻤을 그 내용이 일기에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생대회라도 해서 디즈니 랜드에 그림이라도 그리러 갔다면(물론 한국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재구성한 것이다.) 흐린 구름에 가려 매직 킹덤의 궁전이 보이지 않아 아쉬웠을 테니, 날씨는 흐림이었을 것이다. 아니면, 집에 오는 길에 우산이 없어 흠뻑 젖어 들어와 무심한 엄마를 원망한 그 날의 날씨는 비옴이었을 것이고, 내일의 소풍을 기다리며 안절부절 하다가, 하늘에 새침하게 뜬 무수한 별을 보고 안심한 마음에 잠이 든다면, 밀린 일기장엔 비 온 후 갬이 될 것이다.

 

같은 은혜를 부어주시는 사람에게 저마다 다른 은혜로 나타나는 것이 신기할 때도 있지만, 이 한명의 초등학생에게 저마다 다른 날씨의 일기를 쓰게 하는 것은, 정말 다른 날이었기 때문에 쓴 다른 날씨의 일기가 아닌 동일한 날의 다른 관점에서 쓴 일기라는 것이다. 서로 다른 부분이 연합하여 하나를 이뤄간다. 그렇게 될 수 있는 까닭은 무엇인가? 그것은 서로 다른 그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하나의 근원이 있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초등학생의 일기를 검사하는 선생님의 눈에는 그 다른 날씨도 하루의 일과인 것 처럼, 다른 은혜를 묵상하고, 다른 은사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 역시 하나님 안에서는 하나의 지체인 것이다.

 

위클리프는 “모든 사람은 자신의 말로 성경을 보아야 한다”라는 신념으로 성경의 영어 번역을 감행했다. 그의 번역 활동은 당시 교회로서는 용납할 수 없는 문제였기 때문에, 그는 쫓기는 몸으로 살아야 했던 것이다. 말씀이 변해서는 안되고 가감될 수 없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해 보이는 명제이기도 하다. 하나님의 말씀엔 흠이 없기 때문이라는 설명은 설득력 있는 명제이다. 그러나 같은 어원 속에서도 다른 말이 나온다. 그것은 다른 말들이 모두 자의적인 해석인 것이 아니라, 그렇게 다른 말을 쓰게 하는 그들의 다른 방향성이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가진 말로 말씀해 주시는 하나님이 시기에, 서로 다른 날씨가 다르게 보여진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서 불에 탄 히브리어 성경도, 카톨릭이 지키고 싶어했던 라틴어 성경도, 위클리프의 성경도, 순례자들의 제네바 성경도, 현재 보고 있는 NIV나 개역 혹은 표준 번역도, 어떻게 표현되든 하나님은 그것을 통하여 다른 은혜 속에 하나의 귀결점을 찾게 하신다.

 

“There is one body, and one Sprit, one Lord, one faith, one baptism, one God and Father of all, who is over all and through all and in all. But to each one of us grace has been given as Christ apportioned it.”

    모든 것이 하나가 될 수 있는 원리는 통일된 행동, 통일된 생각, 통일된 방법이 아니다. 하나의 주에게서 나오는 각자 다른 모습의 섬김, 봉사, 믿음에서 나오는 것이다. 모든 것이 손인 사람이 없고, 모든 것이 발인 사람이 없다. 열등하기만 한 사람이 없고, 우수하기만 한 사람도 없다. 신기한 올랜도의 날씨보다 하나님의 은혜는 신기하다. 그러나, 날씨보다 더욱 신기한 것은 그렇게 신기한 하나님의 은혜가운데서, 서로 다른 부분을 보고 느끼면서도 동일한 하나님을 찾아가는 사람이 아닐까?


(2005.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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