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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일상

춘천 CCC 회관

Reg Teddy 2005. 7. 26. 05:20
정확히 말하면, 춘천 CCC아카데미 하우스....내가 CCC생활을 하면서 가지게 된 세가지의 긍지를 가지는 것 중 하나이다. 어떻게 보면 조금은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하나님이 나를 춘천 CCC에 보내신 목적은 이 3가지를 위해서 라는 생각도 가지고 있다.

 


   내가 처음 CCC에 와서 채플이라는 것을 가게 되었을 때, 춘천지구 회관은 아직 완성되지 않은 상태였다. 지하 채플실의 공사가 완전히 끝나지 않은 관계로 한달 가량을 3층에서 드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처음 회관에 대한 인상은 약간의 실망이었다. 순장님들이(특히 상민순장님) 그렇게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던 것과는 달리, 공사판에 쓰는 함석 울타리를 넘어 아직 공사의 기운이 완연히 남아있는 모래산과, 벽돌들 사이로 엘레베이터도 없이 높기만 한 회관은 그다지 좋지 않았던 기억이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3층의 바닥은 매우 뜨거워서 앉아있기 조차 힘들었던 것이 위안이라고 해야 하나?


 


   1학기 동안 채플을 다니면서, 순장님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때론 리트릿 시간에 남은 공사들을 주섬주섬 정리하고, 채플 시작전에 시멘트 양생을 하면서 들었던 회관 건축의 이야기들 때문이었을까? 새벽같이 리트릿 하고, 추운 바닥에서 은색 돗자리를 덮고 자던 1학년 기도회(리트릿 후 우리가 따로 했던 기도회의 이름이다)의 추억 때문이었을까? 1학기 동안 회관은 처음의 별로였던 인상을 벗어나 내 마음의 고향, 그 자리에 눕기만 해도 편한 곳이 되어있었다.


 


   회관 지하 채플실에는 눈이 부시게 은색 돗자리가 깔려있고(두겹이다..), 행여나 누가 달려서 찢어진 자리를 무릎꿇고 박스테이프로 붙이시던 경희순장님의 자취가 묻어있는 곳... 울퉁불퉁한 벽에서 나오는 이루 말할 수 없는 냉기와, 언덕으로 불어오던 매서운 바람을 막지못하는 약한 창문.(당시 평강교회는 2층이 없었다...) 비가오면 물이 뚝뚝떨어져서 화단을 부수고 다시 시멘트 공사를 해야했던 그때(시멘트에 '타스' 라는 방수제를 섞는 것을 그때야 알았다) 그리고, 채플이 끝나면 정말 1명 열외없이 올라가 3층을 가득 매우며 했던 뜨거운 바닥만큼 뜨거웠던 리트릿. 그것이 회관을 사랑하게 된 이유라면 이유랄까?


 


   방학을 맞아 이 회관을 뜬다는 것이 너무나 아쉬워서 시작했던 생활훈련은 나에게 이 장소를 더욱 특별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아침에 눈을 떠서 제일 처음 보는 것이 그 연한 녹색 벽이라면.....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로 더운 날씨에 네개밖에 없는 수도꼭지로 있는 힘껏틀어서 샤워하던 그 시원함이라면.... 아무일 없이 놀고 웃다가, 하나님이라는 그 말에 같이 무릎꿇고 기도하고, 신앙에 대해서 사랑에 대해서 이야기하던 순장님들... 그들과 함께라면.... 어쩌면 한계만 가득할지도 모르는 상황이 더욱 즐거웠던 것은 그곳이 우리가 머물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예비해 주신 집이라는 것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해 생활훈련... 처음으로 경험하게된 회관의 위기... 어린이집을 개원하기 위해서 필요한 놀이터를 얻기위해 7단지를 열심히 뛰어다니며, 서명운동을 받으러 다닐때... 다들 흉물스럽게 생각하는 괴물같은 건물, 이상한 광신도 단체를 위해서 자신의 이름을 빌려 줄 수 없다는 그런 냉랭한 모습들을 보면서, 참 많이 울고, 많이 아파하고, 많이 아쉬워 했던 생각이 난다. 7월 말... 생활훈련을 마치고 여름수련회로 출발하기 전, 순장님들이 "이젠 정말 이곳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 라고 했던 그 말씀이 생생하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그것은 마지막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회관 사랑방 1기! 1년계약을 했던 하숙집을 당당하게 때려치고, 입성했던 그 곳... 아빠순장님과 함께 살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시작했던 사랑방 생활... 물론 아빠순장님은 자비량 준비로 원준철 간사님 댁에 살게 되어 결국 2학기때는 얼굴조차 쉽게 보기 힘들었지만, 모든 것을 다 바치리라는 느낌으로 만들었던 '다드림 사랑방' 그리고, 정말 아낌없이 빈곤했던 현대순장님 승하순장님과의 1년의 회관 사랑방 생활은 나의 CCC생활에서 꽃과같은 추억으로 남아있다. 털깔깔이 승하순장님의 나체 쇼라던지... 노가다 뛰고 돌아온 안승환 뜯어먹기라던가... 가구가 없어서 돌아다니면서 버리는 서랍장들은 다 줏어왔던 추억도 있고, 한림대 근처의 독서실이 망해서 한밤에 독서실에 가서 독서실 책상 뜯어오던 기억들도 나에겐 모두 소중한 사람들의 즐거운 이야기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나 이후의 춘천 CCC를 여호수아 세대라고 부른다. 집 없이 광야처럼 유리하던 우리가, 회관이라는 깨끗하고 예쁜 집에 들어가게된 첫 학번이기 때문이다. 선배들이 그렇게 꿈꿔왔던 그 자리에 이제 당당히 서서 예배를 드릴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뿌듯한 일인지... 몸은 비록 미국땅에 있지만, 어느날인가 꿈 속에서 회관의 붉은 카펫위에서 춤추며 찬양하는 나의 모습을 보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닌 것이다. 내 마음속의 당당한 Pride인 회관이기 때문이다.


 


   언젠가 정경호 간사님께서 전주지구 회관을 다녀 오신 후에 "전주지구 회관은 그랜저고, 우리지구 회관은 완전 티코다" 라는 말씀을 하셨었다. 그래도 그 말이 밉거나 부끄럽지 않았던건 "내 작은 마티즈가 렌트한 비머즈보다 낫지" 라는 주석의 노래 가사처럼 정말 사랑하는 나의 집이기 때문이다. 나는 비록 벽돌 하나하나를 내 손으로 올리고 그렇게 하지는 않았지만, 선배들이 그렇게 쌓아올린 유형의 공간에 우리집이라는 전통의 머릿돌을 하나 세운 사람이라고 자부한다. 그리고 그것은 내 긍지라고 할 수 있다.


 


   작금의 상황은 회관은 강대의 전유물이라는 생각이 적잖아 들게되는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한림대가 회관에 더욱 사랑을 느끼기는 쉽지 않을 것이고, 애착이 잘 가지 않는 남의 집 같을 것이다라는 생각도 분명히 들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내 후배들이 조금더 우리 지구 회관에 대해서 긍지를 가지고 자랑삼았으면 좋겠다. 춘천지구 회관이 솔로몬의 성전만큼 긍지를 가지는 스룹바벨의 성전이 되길, 이 전의 나중 영광이 전의 영광보다 큰 그런 하나님의 선교기지가 되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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