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일반/일상

삼겹살 5근

Reg Teddy 2004. 8. 1. 05:28

아버지 순장님이라는 이름이 그리워지는 더운 여름이다. 순장님은 지금 시간에도 일본의 복음화를 위해 열심히 일하고 계시겠지.

처음 CCC에 들어와서 아버지 순장님을 만났다. 장승익 순장님... 체육학과에 다니는 순장님이라 좀 거칠은 부분도 있었지만, 부드러운 성격의 순장님이셨다. 물론 자매들에게만 한없이 부드럽고, 형제들에게 거칠며... 순원들을 챙겨주지만, 안부전화같은 건 자주 안하시는 분이었다. 이 글을 읽으면서 누군가가 생각이 나지 않나? 역시 유는 유를 낳는다고, 어쩌다 보니 나도 순장님하고 똑같이 하고 있는 것을 발견한다.

1학년 1학기때였다. 혼자서 하숙을 하고 있던 나는 사실 하숙집에 들어가는 것을 그리 즐기지 않았다. 좁은 방도 방이지만, 혼자있으면 심심했고, 모 책읽는걸 좋아하지도 않는데다, 주인집 분들이 조용한 스타일이라 뭘 하기가 좀 그랬었다. 그래서 자주 놀러갔던 곳이 짝순이었던 현주네 집이랑, 우리 순장님의 사랑방과 드보라 사랑방이었다.

지금생각하면 멀기만 한 사랑방에 왜 그리도 자주 갔었는지... 당시에는 순원들이 사랑방에 가는 것이 꽤 자주 있는 일이라서, 각각 파가 정해져있기도 했다. 골고다 파와 벧엘파, 드보라파, 원혁이아저씨네 파.....ㅋㅋ 아무튼 나는 벧엘 사랑방에 자주 놀러갔었는데, 늘 갈때마다 상민순장님의 하이톤의 비명을 즐겨 들으며 순장님이 끓여주시는 김넣은 라면을 즐겨먹던 기억이 난다. 야구좋아하는 상민순장님의 메이저리그 카드도 구경하고, 간혹 순모임도 하고. 이야기도 나누고....

5월 8일이었다. 마침 토요일이라 학교에 사람도 없고, 심심하게 돌아다니던 현주와 나는 순장님네 쳐들어가기로 했다. 그냥 빈손으로 가기가 뻘줌해서 어버이 날이라는 핑계로 삼겹살 다섯근에 파썰은거 많이 달라고 해서 순장님 댁에 찾아갔더니 상민순장님 대신 정찬 순장님이 와 계셨다. 갑작스런 방문에 놀라기도 하시고, 우리가 사온 고기와 우리의 말에 약간 감동 받으신 순장님... 결국 우리는 앉은 자리에서 삽겹살 5근을 먹었는데....

밀폐된 공간인데다가, 바닥에 아무것도 안깔은 조그만 방에서 삽겹살을 먹었으니, 방 안은 자욱했고 바닥은 미끌어웠다. 이윽고 도착하신 상민 순장님, 냄새를 맡고 많이 기대를 하셨으나 돌아온 것은 차갑게 식은 밥과 눅은 김을 넣은 라면.... 게다가 그나마도 끓인걸 우리가 뺏어먹어서 순장님은 많이 못드셨던 기억이 난다. 상민순장님껜 무지 죄송했지만, 즐겁고 즐거웠던 추억이다.

아버지 순장님이라는 말을 처음으로 내 스스로가 실천해보고, 느끼면서 순장님과의 사랑의 교감을 할 수 있었고, 그때의 경험이 내가 후에 순장님을 찾게되는 하나의 원동력이 되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원동력을 불러 일으켰던 것은 결국 승익순장님의 나를 향한 사랑이 아니었나 생각해 본다.

가끔은 내가 키우는 순원들에게서 내가 과연 아버지의 사랑을 부어주고 있는가를 생각해 본다. 결론은 내가 받은 만큼의 사랑을 나는 아직 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가끔씩 그리워 질때면 라면에 김을 넣어 먹는다. 별로 좋아하는 메뉴가 아니었지만, 아버지 순장님의 사랑을 느낀다는 것. 언젠가 제헌이가 삽겹살을 사와서 같이 구어 먹은적이있다. 이놈은 나한테 회도 사줬다. ㅋㅋ 대단한 녀석, 내가 과연 이녀석에게 얻어먹을 만큼의 사랑을 주고 있는가는 모르겠다. 먹는것을 떠나서 사랑을 먹이고, 사랑을 받는 순장 순원이 되어야 할텐데 말이다.

'일반 >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사성어 반  (0) 2006.02.02
생활훈련  (0) 2006.01.16
춘천 CCC 회관  (0) 2005.07.26
독서공간  (0) 2004.08.23
노모 히데오  (0) 2003.08.29
썩은순대  (0) 2002.07.25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