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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30
IIT목요모임
유 1:21~23
 

          얼마 전에 인터넷에 샴 이라는 만화의 리뷰를 쓴 적이 있습니다. 이 만화는 한 의 좋은 쌍둥이 형제가 교통사고를 당하게 되고, 그 사고로 동생은 죽고 형은 살았는데, 그 살아남은 한 몸에 두 개의 영혼이 살아가게 되는 내용이었습니다. 결국 한 몸을 두 영혼이 나누지 못하기 때문에 선택을 해야 했고, 형이 동생에게 자신의 몸을 양보함으로서 죽음을 택하고, 동생은 살아남지만, 형이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가족 때문에 자신이 형인 척 연기를 해서 살아남는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저는 동생의 입장에서 리뷰를 했었는데요. 형이 동생을 위해서 그렇게 희생을 한다는 것이 잘 납득이 가지 않아서 였습니다.

 

           요한복음 15 13절에는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면 이 보다 더 큰 사랑이 없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남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희생의 삶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언듯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것은 그것을 설명할 만한 방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자신을 죽이는 예수님의 사랑을 인간이 이해 할 수 없는 것은 인간의 상식에서 남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는 일이 대단히 어려운 일 일 뿐 더러, 자신의 적을 위해서 희생한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일이기 떄문입니다.

 

           불교에서는 석가모니의 마음을 ‘대자대비’ 하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설명하는 석가모니의 자비의 이유가 바로, 남의 고통을 위해 자신이 고민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끊임없는 수행을 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자신과 관련이 없는 사람을 위해 자신의 삶을 투자하는 것은 불교에서 말하는 극 선의 모습인 것입니다. 유교에서 역시 살신성인 이라는 말을 하고 있고, 아버지를 위해 목숨을 버린 효녀 심청이나 긍휼히 여기는 마음의 보답을 받는 흥부전과 은혜갚은 까치이야기를 봐도, 희생하는 삶에 대한 사람들의 선망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희생하는 사람들로 이루어져있지 않으며, 오히려 희생하는 사람들이 바보가 되는 세상입니다.

 

           본문의 말씀은 “의심하는 자들을 긍휼히 여기라”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긍휼이라는 말은 Mercy, 즉 자비로운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유다서가 쓰여지던 당시는 많은 이단의 무리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의심을 품고 있었고, 자신의 신분들에 대해서 망각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3절 말씀에 보면 “하나님의 은혜를 색욕거리로 만들고 있다”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는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단지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방법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이단들은 교묘하게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라는 말로 자신의 욕심을 방종하게 채우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런 자들에 대해서는 당연히 당당히 제거하라, 악의 뿌리를 뽑아라 라는 말이 더 어울린다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완전히 반대의 의견이라면 생각할 여지가 없지만, 비슷한 모습, 비슷한 이름을 가지고서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은 큰 문제를 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죠. 외부의 적보다 내부의 적이 무서운 법입니다. 그래서인지 유다는 그들의 모습의 가증함과, 악랄함 그리고 그것을 따라 갈 시에 패망할 수 밖에 없는 모습을 설명합니다. 그러나 유다는 이들을 단순히 내치는 것이 아니라 몇 가지의 방법으로 주의를 줍니다.

 

첫번째는 성령으로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기 자신을 지키는 것입니다. 자기자신을 지킨다는 말은 자칫 소극적인 태도로 보여질 수 있습니다. 남들이야 어찌되었건 자신의 신앙만을 지킨다는 것으로 보여지기 쉽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령으로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사랑 안에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벗어나지 않는 태도를 의미합니다. 우리는 전도를 하면서 논쟁을 하지 말라라는 이야기를 합니다. 이는 논쟁으로 이기고 지는 논리 안에서 분명 승리와 패배는 갈라지게 되지만, 그 논쟁 속에서 오히려 이기기 위한 전쟁,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기 위한 싸움으로 바뀌기 쉽상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정결함과, 자신의 뛰어남을 관철시키는 것은 상대를 굴복시키고 잘못된 틀에서 건져낼 수 있는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 속에서 오히려 자기 자신을 지키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정치라는 것은 논쟁의 집합이고, 서로의 상황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한 싸움입니다. 그러나 그 속에는 수 많은 거짓과 변화가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자신에게 돌아올 이득을 위해서, 상대를 가리고 걸러내고 자신이 그 자리를 지켜 남는 것은 정치의 기본입니다. 그 기본을 위해서 사실 자신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도 양보할 수 없고, 이해에 맞춰 타산적으로 움직이게 되는 것이 싸움으로 얻게 되는 결과입니다. 주장이라는 것은 하나의 옳은 이야기를 계속 함에 있어서도 역시 잘못된 이야기를 하게 만드는 단초가 됩니다. 처음의 시도가 옳았다고 할지라도 그 길을 걸으며 그 시도가 점차 퇴색되어져 가는 것은 싸움의 한계입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성령으로 기도하며 자신을 지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상할 수 있는 싸움에서 지켜주기에 우리는 우리의 자신을 지킬 수 있는 것입니다.

 

두번째는 예수님의 긍휼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긍휼은 궁극적으로 원수를 이기는 힘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는 사람들 조차도 형제로 대하며 그 원수들을 불쌍히 여기시는 긍휼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상대의 잘못을 깊이 이해하며 그것을 고치기 위해 자신이 죽는 모습으로 헌신하신 예수님의 긍휼은 궁극적으로 상대의 잘못을 이겨 낼 수 있습니다. 악의 뿌리는 뽑으려고 하면 더욱 깊게 박히는 습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마치 잡초와 같이 교묘해서 눈에 보이는 부분을 잘라내어도 이내 뿌리에서 다시 치고 올라오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런 악의 근본을 바꾸는 것은 긍휼의 모습입니다. 긍휼은 결국 눈 앞에서는 지는 것처럼 보여도 예수님의 부활처럼 끝내 이기는 힘이 있습니다.

 

로마서 12 20절 말씀에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함으로 네가 그 머리에 숯불을 놓으리라”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는 원수에게 직접 숯불을 던지며 공격하는 것 보다 그를 위하여 필요한 것을 채워 줄 때 원수가 녹는다는 긍휼의 힘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의심하는 자를 긍휼히 여기라”는 말은 의심이 있고, 이단의 책략에 빠져 오히려 그 신앙의 바른길을 걷지 못하고 자신만을 생각하는 사람에게 책망을 하기보다는 그가 그 길을 다시 되돌아보도록 긍휼한 마음을 가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긍휼은 단순히 방치하는 것이 아닙니다. 23절에 보면 “어떤 자를 불에서 끌어내어 구원하라, 또 어떤 자를 그 더럽힌 옷이라도 싫어하여 두려움으로 긍휼히 여기라” 라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 우리는 잘못에 대한 정결함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긍휼을 이루기 위해 적극적으로 불에 뛰어드는 태도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긍휼은 단순히 앉아서 방치하는 것이 아닙니다.. 단순한 방치는 어떠한 해결책도 제시해 주지 못하지만, 긍휼은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통한 희생이 있습니다. 이 희생은 십자가의 길을 걸으셨던 예수 그리스도 처럼 불 속에라도 뛰어들어 구원을 하는 모습입니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을 하는 형제에게 오히려 자신의 시간과 정성을 내어 주어 희생으로 섬기고 봉사하는 마음을 가지며, 그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최선을 보여준다면 오히려 잘 못된 길로 가고 있는 사람들이 그런 긍휼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분명 지금의 크리스쳔 공동체는 잘못된 가르침에 빠져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옳다라고 믿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음을 봅니다. 그럴 때 일수록 그들과 경쟁함으로 다투기보다는 그들을 형제로 여기는 긍휼한 마음과 그들을 불 속에서도 건져내어야 겠다는 긍휼한 희생의 마음으로 그들을 위해서 헌신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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