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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묵상

문을 여는 사역

Reg Teddy 2008. 11. 14. 08:26

2008.11.13
IIT목요모임
골 4:2~4

 
 
근간에 기도로 움직이는 배 둘로스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이 책은 세계적인 복음 선교단체인 오엠 선교회의 사역 중 하나인 둘로스 사역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둘로스 사역은 각 세계의 언어로 된 6천여종의 책 50만권을 적재한 로고스 호라는 배를 타고 세계를 돌아다니며 선상서점을 열어 책을 읽기 힘든 사람들에게 지식을 전하고, 수련회 및 구호 프로그램들을 개최하며 필요를 섬기고 문이 열려있지 않은 나라에 가서 복음을 전하는 사역입니다. 이 책의 추천사를 해 준 이시영 전 유엔 대사의 말을 빌면, 하나님 나라의 유엔 대사와 같다고 하였는데, 다국적의 사역자들이 하나로 마음을 합쳐 사역하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책에 나온 둘로스의 여정은 지중해를 거쳐 사우디 반도의 서쪽과 동아프리카, 스리랑카를 거쳐 다시 사우디 반도의 동쪽을 지나 인도를 거쳐 아시아로 가는 여정을 담고 있습니다. 이 지역들의 특징은 아시다시피 복음에 대해서 많이 닫혀있거나, 손님을 받을 만한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나라들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책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쉽게 입항하기 힘든 나라들이 많고 어떤 항구에서는 입항허가를 내 주지 않아 들어가보지도 못하는 일도 경험하게 됩니다. 그러나 열면 닫을 자 없고, 닫으면 열자 없다는 계시록 말씀처럼 하나님께서는 닫힌 문도 이용하시고, 닫힌문을 활짝열기도 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2006년도에 우연한 기회에 오픈도어 선교회의 후원의 밤에 참석한 적이 있었습니다. 오픈도어 선교회는 복음에 대해 열려져 있지 않은 지역에 특공대처럼 투입하여 그 문을 열도록 하는 굉장히 하드한 단체입니다. 그들은 문을 여는 사역에 이골이 나 있어서 인터콥처럼 억지로 강요하는 것이 아닌 박해를 받음으로 문을 여는 것을 모토로 삼고 있습니다. 그들의 구호는 박해는 좋은 것입니다입니다. 이 선교회의 후원의 밤에 참여하고 놀랐던 것은 두 가지 입니다. 첫째는 그들이 가진 박해라는 것에 대한 관점이었고, 둘째는 그들의 사역 설명회에 모인 사람이 굉장히 적다는 것이었습니다. 거기서 저는 그들의 사역, 문을 여는 사역이 그렇게도 중요함에도 사람들의 관심이 문을 여는데 있지 않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느낀 듯 하였습니다.

 

   본문에서 사도바울은 골로새의 성도들에게 자신의 팀을 위해서, “하나님이 전도할 문을 우리에게 열어주사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게 하시기를 구하라라고 기도해 달라고 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기도를 부탁하는 것이 복음을 전할 수 있는 문을 열어달라고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사도바울이 구한 것은 큰 무리의 사람들이 복음을 듣는 것도 아니었고, 자신의 사역으로 교회가 세워지는 것을 구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는 오직 문을 열어달라 라는 간구를 하였습니다. 문을 연다는 것은 이렇듯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문은 벽의 맞은 편을 이어주는 통로입니다. 벽이라는 것은 막힌 것, 서로 소통할 수 없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것은 공간과 공간을 나누어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벽으로 나누어진 공간은 서로 다른 목적을 갖게 됩니다. 지금 이 강당과 MTCC를 가로 막고 있는 저 주황색 벽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조용하게 말씀을 듣고 모임을 가질 수 가 있습니다. 이는 벽이 두 공간을 나누어 서로 다른 목적을 갖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제 왼쪽과 오른쪽에는 문이 있습니다. 이 문은 지금 공간의 목적을 마친 후 새로운 목적을 위한 공간으로 움직이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공간입니다. 만약 지금 우리가 있는 공간의 문이 없다면, 우리는 이 곳에서 다시는 나기지 못한 채 계속 여기서 밤을 새워야 할 것입니다. 이는 문이 잠겨 있는 것 역시 마찬가지 입니다. 제 오른쪽의 문은 안에서 밖에 열 수 없는 문입니다. 만약 이 문을 안에서 열어주지 않는다면, 바깥의 사람은 절대로 이 안에 들어올 수가 없는 것입니다. 문과 같은 모양을 하고 있지만, 바깥에서 볼 때 이 문은 벽과 진배 없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의 상황은 이와 비슷한 상황이었습니다. 안에서 열지 않으면 열리지 않는 문 앞에 서있는 것이 사도바울의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이런 문이 투명하다면 안에 있는 사람을 볼 수도 있겠지만, 안을 볼 수 없는 문 밖에 서 있다면 이 문은 벽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 문을 벽으로 생각하여 결국은 포기하게 됩니다. 어쩌면 이 문 밖에서 두드린다는 생각을 안할지도 모릅니다. “이것은 비상용으로 만들어진 공간이니 이곳으로 출입할 수는 없을 것이다.” 라고 생각하는 것이죠.  오픈도어 후원회 모임을 나오면서 느꼈던 것이 사람들의 관심은 열리지 않을 것 같은 문에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열려져 있는 문, 누구나 드나드는 문은 문이라는 인식을 하며 오가지만, 닫혀있는 문을 열려는 생각은 좀처럼 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태복음 7:13절 말씀에서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그 문은 크고 넓으니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그 길이 좁고 협착하여 찾는이가 적음이니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길이 협착할 뿐만 아니라, 그 좁은 길을 따라 간 길 끝의 문은 잠겨져 있다면, 여러분은 어떤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둘로스 선이 스리랑카 콜롬보를 입항 할 때, 스리랑카는 내전 중이라 입항이 불가능 할 것이라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90년이 된 낡은 배 이기에 스리랑카에서 정비하지 못하면 운항이 위험할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 때, 88년에 같이 사역하던 형제가 대통령의 공보실장이어서 천신만고 끝에 입항허가를 받았지만, 둘로스가 항구에 다다를 즈음에 대통령이 바뀌어 다시 입항이 거부되는 진퇴양난의 상황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23년만에 만난 자카트라는 형제가 대통령과 친한 관계라는 것을 알게되어서 오히려 영부인이 귀빈으로 참가하는 입항을 할 수 있게 되는 놀라운 일이 있었습니다. 문이 잠겨져 있어 다른 항로로 움직였다면 영부인을 귀빈으로 모시는 입항도 불가능 했을 것이고, 스리랑카에서 있었던 놀라운 사역도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쿠웨이트에 입항할 때에는 많은 노력을 했지만, 결국 입항이 무산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쿠웨이트에 입항하지 않음으로서 해일을 피하고 오히려 바레인에서 더 귀한 사역을 하며 그곳의 왕족을 전도할 수 있게되는 일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문을 두드리고 열기를 위해서 간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문을 여는 것은 두드리는 사람이 여는 것이 아님을 보게 됩니다. 문을 열기 위해서 끊임없이 구해야하지만, 끊임 없는 구함이 문을 밖에서 여는 일이 되었을 때, 그는 반가운 손님에서 강도가 되고 맙니다. 주인이 열지 않은 문에 대해서 억지로 여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흔히 강청하는 기도를 이야기 하면서, 하늘 문을 여는 기도라고 합니다. 그러나 기도가 문을 열 수도 있지만, 결국 여시는 분은 하나님이신 것을 봅니다.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지만, 우리의 기도 때문에 문이 열리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기도는 직접적으로 문을 열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을 감동시켜 열도록 하는 것입니다. 만약 안에 있는 사람이 그 문을 닫기로 마음 먹는다면 그 문은 절대로 열리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간구할 것이 문을 열기를 위해 요청하는 것이면, 그 문이 열린 이후를 준비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 될 가장 큰 일입니다. 바울은 4절에서 마땅히 할말을 하리라라는 말로 자신이 마땅히 할 말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말은 꼬이고, 정확한 의사를 전달 할 수 없습니다. 둘로스의 대단한 점은 그들이 어떤 상황 속에서도 준비된 모습으로 사역을 하고 있는 점이었습니다. 바다가 거친 것처럼 시시각각 변하는 상황 속에서도 그들은 늘 다음 사역을 준비하고, 필요한 때에 헌신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저 문을 열기만을 위해서 간구하는 것 만이, 그래서 문을 여는 것이 모든 일의 끝은 아닙니다. 문을 열릴 때를 대비해 그에 맞는 이야기를 준비하고 있는 것, 마땅히 해야할 일. 마땅하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 클리어하게 이야기 할 수 있는 준비되어진 것을 의미합니다. 클리어하게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이 준비되어 있지 않다면, 열린 문은 금새 닫혀지고 맙니다. 그리고 한번 열렸다 닫힌 문은 다시 열리지 않을 가능성이 100%입니다. 이것은 영업사원이 한번 설명에서 실수를 한 후 다시 기회를 얻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 입니다. 우리는 복음을 파는 그리스도의 영업사원입니다. 문을 여는 것 이상으로 문을 연 사람에 대한 준비가 필요한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문을 여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 문이 열린 이후에 마땅히 해야할 일을 준비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문이 열리지 않는다고 실망할 수 도 있지만, 필요한 시기에 문을 열릴 것입니다. 그 문을 여시는 분은 우리가 간구하며 기도하는 대상인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둘로스 책의 한구절을 소개하면서 마치려고 합니다. “나는 자동문 이론을 믿는다 멀리서 보면 자동문은 닫혀있다. 하지만 문이 닫혀있어도 우리는 계속 걸어가야만한다. 그러다가 센서가 물체를 감지하는 지점에 이르면 그 문은 자동으로 열리게 되어 잇다. 닫혀있는 문을 멀리서 보고 그 자리에서 문이 닫혀있다고 그냥 서있기만 하면 문은 절대로 열리지 않는다. 우리는 불확실성이라는 닫힌문을 향해 믿음으로 걸어가야 할 때가 많다.” 복음을 들고 나아가는 발걸음은 아름답습니다. 준비되어있는자의 당당한 걸음에 자동문처럼 열려질 캠퍼스를 기대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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