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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묵상

요셉

Reg Teddy 2009. 6. 22. 21:10
<이미지 출처: http://www.allthatnews.co.kr>



모르긴 몰라도 요셉의 옆에서 요셉을 본 사람들의 생각은 이거였을 것 같다

"저 자식 재수없어"

이건 그의 형들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술 맡은 관원장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을까? 보디발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을까?

무결한 사람이 옆에 있으면 자신의 더러움을 더욱 돋보이게 하기에 질투의 대상이 되고는 한다.

보디발은 그가 너무 일을 잘 처리하고 청렴하기까지 했는데도, 그의 변명 한 마디를 듣지 않고, 옥에 보낸다.

오역일 가능성도 있지만, 

RSV나 ASV 공동번역 성경에는 요셉이 이런 말을 한다

"이 집에서는 그 분보다 제가 더 실권이 있습니다(he is not greater in this house than I)"

이것이 교만함의 말이 아니라 진실이었기 때문에 더욱 불안하고 두렵지 않았을까? 

개역성경에서도 "이 집에 나보다 큰 이가 없다" 라는 말을 함으로서 그의 실권이 어느정도인지 알 수 있다.

보디발의 생각은 어떠했을까? 

종이지만 너무 탁월한 그가 결국 자기의 모든 것을 장악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술 맡은 관원장은 어떠한가?

그가 분명 요셉의 말대로 살아 났음에도 그는 요셉을 기억하지 않았다. 그리고 굳이 잊어버리려고(but forgot him) 했다.

이는 요셉의 능력에 대한 불안함이 있었을 것이다. 너무나 뛰어나기에 은연 중에 품게되는 질투.

야곱은 그의 아들 요셉을 "샘 곁의 무성한 가지가 담을 뛰어 넘은 것과 같다" 라고 했다.

뿌리는 물론 가지까지 튼실한 완전체, 엄친아 등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요셉이 아닐까.




창세기에서 인물 이야기로 치면 가장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는 것이 바로 요셉의 이야기이다. 마치 무릎팍도사에 나왔던 안철수 씨 처럼, "사람이 어떻게 저럴 수 있는가!" 라고 탄복하게 만드는 인생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 요셉이다. 히브리서는 그의 믿음을 이렇게 표현한다. "이스라엘 자손이 떠날 것을 말하고, 그 뼈를 취하여 약속에 땅에 장사지내달라고" 그의 믿음은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바라보는 믿음이었다.  태생이 고결하고, 완전에 가까웠던 그이고, 한 때 자신에게 도취되는 듯 보이기도 했었다. 그러나, 그에게 주어진 오랜 시련의 시간은 그가 하나님에게 더욱 집중할 수 있는 계기를 주었다.  

그의 눈은 지금 현재가 아닌 미래에 하나님이 언젠가 이루실 일을 보고 있었고, 그의 눈은 하나님의 넓음에 닿아 있었다. 그의 고고함 만큼이나 그는 일반인들이 보는 현실을 넘어선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꿈의 사람(Dreamer) 라고 한다. 평범한 사람의 눈에는 꿈처럼 보이던 먼 훗날의 하나님의 시간이 그의 눈에는 조금이나마 보였던 것일까? 하나님의 축복은 그의 가지를 뻗어가게 하였고, 그는 눈 앞의 담장을 넘어서 더 멀리 바라볼 수 있는 튼튼함을 가졌다.

하나님의 시간을 바라본다는 것은 눈앞의 담장을 넘어서 보는 것이다. 현실과 이상은 다르다면 좌절하는 것이 아니라, 그 현실을 넘어 뻗는 것이 바로 먼 미래의 하나님이 이루실 일을 믿음으로 바라보는 꿈의 사람의 믿음의 눈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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